#10 올해 사월이십이일 / 201905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 그 해의 기억은 아직도 좀 생생한 것 같은데 중간의 기억이 사라진 것 같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올해도 차분히 하루를 아빠와 동생과 함께 보냈다.
야근을 하고 사온 아빠의 멕시칸치킨을 먹고 잠을 자서 그런지 얼굴이 퉁퉁 부은 아침이었다. 9시에 출발한다는 말에 준비를 하고 동생도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서 준비했다. 아빠는 이미 준비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작은 구형 모닝차에 짐들을 실어 올리고 아파트 앞 마트에 들러서 매실주를 하나 사오는 아빠, 이 또한 늘 같은 풍경이다. 그렇게 세 식구 창밖을 보면서 경주로 가면서 이런저런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한다.
절에 도착한 우리
스님께서 사고를 당하셔서 몸이 불편하시다고 한다. 보기에도 작년보다 기운이 없어 보인다. 1년 밖에 안지났는데 기운도 말씀도 없으신 모습에 마음이 안좋다. 법당에 들어가서 불경을 읊으시고 우리는 뒤에서 들으면서 법당안을 멀뚱멀뚱 살펴본다. 작년엔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동생한테도 물어봤다. 작년에도 이렇게 길게 했었나? 자기도 처음에는 잘 기억안났는데 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고 한다.
한참을 하고있는데, 조용한 절에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갓난 아기가 얼굴을 내밀며 들어왔다. 귀엽고 통통한 아이. 누구인지 몰랐는데 스님의 가족인가보다. 이곳이 뭘하는 곳인지 뭘하고있는지도 모르는 아기는 작은 발로 스님 곁을 법당안을 돌아다니며 목탁도 두들겨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돌아다닌다.
스님과 함께 계신 아저씨도 계신데, 제사를 지내면서 안내를 해주시고 보조를 해주시는데, 인상이 너무 좋으시고 착하신 분이다. 손가락을 다치셨다고 가리는 손가락이 너무 아파 보여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퉁퉁 부은 손가락
잔을 한잔씩 올리고 절을 하는데, 여자는 큰절을 올려야 한다며 큰절 할줄 아냐고 물어보셨다. 잘 몰라서 어버버 하고있으니 손을 이렇게 하고 다리를 양반다리 처럼 앉는거라고 했다. 천천히 하면 되는데 마음이 급해서 점점 급하게 했던 것 같다.
다 마치고 정리를 하고 식사를 했다. 아기의 엄마와 아빠께서는 스님의 가족인가보다. 부엌에서 나도 같이 준비를 하느라 식사를 할 때쯤에 아기랑 부모님을 보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막둥이라고 한다. 큰 딸은 22살 , 지금 아가는 2살 대단하시다.
별 생각없이 아기를 보았었는데,
문득
우리 아빠가 아기한테 말을 걸고 쳐다보는 모습을 보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우리 아빠도 손주를 보면서 기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 나이가 21살에서 31살이 되었듯이 우리 아빠 또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나이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새삼스럽다.
우리 아빠도 동안이라서...ㅎ 그런 생각과 함께 10년째 다큰 나와 동생의 밥을 차리고 부엌일을 하는 아빠를 생각하니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미안하기도했다.
절 바로 옆에는 아빠의 농막이있다. 농막이라는 이름보다 적절한 이름이 없나 찾고있는데 아빠는 농막이라 하더라. 하지만 농막이라고 하기엔 아름다운 언덕위의 집이다. 아빠가 심어놓은 잔디와 나무, 꽃들위로 작은 집이 있다. 그 집에는 없는게 없는 아지트이다. 그곳에서 나와 동생은 꿀잠을 잤다.
조금만 가까우면 나도 많이 왔다갔다 했을 것 같다. 조용히 산속 공기와 산속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일어나서 슬리퍼를 신고 마당으로 나가보았다. 꽃이 얼마나 쨍하고 예쁘던지 진짜꽃인가? 할정도로 예쁜 색을 띄고있었다. 둘러보고 들어오니 아빠가 봄나물과 사과를 넣어서 만든 비빔국수를 해주었다. 우리아빠는 어쩜 이렇게 솜씨가 좋은지
가자,
하는 말에 짐을 챙겨서 나선다.
동네를 나가는 길에 아빠 친구분을 만났다. 인상이 좋으신 아저씨는 큰 트랙터에 앉아계셨다. 반갑게 나가서 인사하는 아빠,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다. 옆에있는 소 구경한번 하고 인사를 드리고 다시 차에 탄다. 동생을 몇번 봤는데 나는 처음보셔서 그런지 놀라신다. 동안이네! ㅎㅎ
산소에 도착했다. 명절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시끌시끌 하지만 오늘같은 날은 사람도 없는 조용한 곳이다. 그곳에 우리 엄마가 있다.
도착해서 아빠와 동생은 금새자라서 덮고있는 잡초들을 뽑는다. 비석을 닦고 가져온 술과 과일을 꺼내는 것은 내몫이다. 몇해째 지내다보니 이젠 말하지 않아도 할것들을 한다. 울산에 오기전에 만들어온 꽃 두개를 혹시나 해서 가지고 왔다. 그것도 함께 상위에 놓았다. 아마도 직접 주었으면 정말 좋아했을 것 같다.
여름엔 비도 많이오고 잡초도 많이 자라겠지..? 하면서 또 갈 준비를 한다.
가자,
항상 그렇듯 갈때는 뒤돌아보는거 아니라고 했다.
10년째
벌써 10년째 맞이한 사월이십이일 이었다.